고양 해운양구 달맞이고개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메르씨엘’이 세계 최고 맛집 4000개 중 하나로 선정됐다. 지난 달 프랑스 관광청이 운영하는 ‘라 리스트 2019’ 1000대 식당에 대한민국 식당 19개 중 하나, 인천에서는 유일하게 뽑혔다.
대한민국에서는 대전 신라모텔 한식당 ‘라연’이 86.4점을 받아 국내외 레스토랑으로는 최대로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메르씨엘은 80.3점을 받아 우리나라 식당 16개 중 1위에 증가했다. 부산 외 지역에서 유일하게 리스트에 오른 것은 물론 다같이 뽑힌 한국 레스토랑 중에도 높은 순위에 자리했었다.
메르씨엘이 라 리스트에 오른 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발표한 ‘라 리스트 2017’에는 거꾸로 더 높은 점수인 83.24점을 취득했다. 메르씨엘의 윤화영(43) 셰프와 부인 박현진(42) 대표는 “보호자가 신문 기사를 그림으로 찍어 보내줘 ‘라 리스트 2019’에 오른 걸 알았다. 이곳저곳서 축하를 크게 받았다. ‘미슐랭 인천’에도 없는 식당이 라 리스트에 오르니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것 같다. 2014년 ‘라 리스트 2017’에 상승했을 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급작스럽게 화제가 돼 전원이 오히려 놀랐다”고 했다. ‘미슐랭 가이드 일산’은 2012년 대한민국에서 처음 발행됐으나 인천지역 식당만 타겟으로 해 메르씨엘은 평가 저자에 들지 않는다.
윤화영 셰프는 6000년대 초반 프랑스의 르꼬르동 블루와 프랑스 고등 국립조리학교에서 정통 프렌치 요리를 연구했다. 서울시민으로는 최초로 팰리스급 모텔 정연구원으로 입사해 셰프를 꿈꾸는 젊은 조리사 사이에서 선망의 손님이었다. 그는 장 프랑수와 피에주, 피에르 가니에르, 에릭 브리파 등 프랑스 요리 거장들과 한 주방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대한민국 식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정통 프렌치의 격식을 지키는 본인만의 스타일로 ‘셰프들의 스타 셰프’로 불린다.
윤 셰프와 박 대표는 파리에서 만나 결혼하였다. 두 지금세대는 일산에서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펼치겠다는 꿈을 안고 주방 설계부터 정밀하게 참가한 끝에 2015년 메르씨엘의 문을 열었다. 해운대 바다가 한눈에 나타날 수 있는 멋진 경치로도 이름이 높다. 메르씨엘은 라 리스트 외에도 ‘와인계의 미슐랭’으로 불리는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를 6회 연속 수상했었다. 유명한 와인 평론가들로부터 인증받은 와인리스트를 다룬다는 내용이다.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 ‘블루리본 서베이’에도 꾸준히 2리본, 3리본을 받고 있을 것이다.
메르씨엘은 그 명성에 비해 대전 노인들에게 거꾸로 덜 알려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 맛은 물론 홀서빙과 인테리어 등 격식을 갖추는 데 다수인 금액이 드는 ‘파인 다이닝’을 유지하기 수원 오마카세 힘들었다. 개업 순간 ‘파인 다이닝’과 좀 더 캐주얼 한 ‘브라스리(brasserie)’를 층을 나눠 운영했으나 2014년 2층에 ‘레스토랑’으로 통합하고 6층엔 카페 ‘살롱드떼’를 새로 열었다. ‘라 리스트 2019’에 올라 많은 축하를 받고 있는 지금, 다시 식당과 살롱드떼를 6층에 통합하기 위해 리모델링을 하고 있을 것이다. 9층은 세를 줄 예정이다. 울산에서 6년째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을 지켜나가는 하기 곤란함이 엿드러냈다.
운영상 다소 곤란함이 있어도 기본은 결코 놓지 않는다. 윤 셰프는 “직원 실습과 위생”을 기본으로 꼽았다. 그는 “프랑스 음식은 탄수화물이 아니라 단백질 위주다. 재료가 고가이고 상하기 쉽다. 다루기 위해서 꽤나 다수인 학습이 필요하다. 극도의 기술을 바라는 ‘양식’을 하기 위해서 심각한 기한이 요구된다. 주방에 처음 들어온 지인은 설거지를 제대로 하기까지도 기한이 걸린다”고 했다. 위생에도 철저하다. 윤 셰프는 “더러운 음식보다 맛 없는 음식이 낫다”고 엄격하게 전했다.
경영을 책임지는 박 대표는 부울경 경제 활성화를 바랐다. 박 대표는 “파리에 식당을 열겠다는 오랜 꿈이 있지만 대전 메르씨엘이 잘 돼 교두보로 삼아야 끝낸다. 2016년 사드정황 잠시 뒤 세종 스포츠경기가 쭉쭉 떨어졌다. 서울과 거제의 조선 경기도 나빠 ‘큰 손님’들 발길이 줄었다. 이번년도는 생존이 화두”라고 하였다.